앙코르 와트 보물 전설의 진실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18년이 되었다.
프랑스 극동학원 업무를 맡고 있지만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다. 미친 듯한 더위와 비 때문에 오늘도 유적지까지 다녀오는 출퇴근용 코끼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침에 유적지로 갈 때는 느긋하게 걷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질주를 한다. 언젠가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가 발명된다면, 운전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 유적지까지 자동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몇 년 전 그랜드 호텔 당코르(Grand Hotel d’Angkor, 1929년)가 지어졌지만, 나는 그곳을 지나치며 흘깃 바라볼 뿐이다. 휴일에 그곳에서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팔자는 아닌 듯하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찰리 채플린이 앙코르를 방문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내 신세로는 그와 마주칠 일조차 없을 것 같다. 다만 채플린이 이곳에 오게 된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이 탐험과 연구가 오늘날 앙코르 관광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아, 오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조지 트루베 때문이다. 물론 결국은 베트남에 있는 프랑스 극동학원 원장에게 급히 보고할 내용이기도 하다.
삼십대 초반의 이 친구는 유적 연구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앙코르 와트 중앙 성소 아래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듣더니 몇 달째 앙코르 와트 3층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어제 그는 아래의 도면을 내 책상 위에 툭 던져 놓고는 피곤하다는 듯 대나무 의자에 앉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도면에는 지하 27.75미터까지 파 내려간 공간의 측면도와 그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도면에 기록된 층위
| 깊이 | 발견 내용 |
|---|---|
| 0–2m | 중앙 성소 바닥 석판 |
| 2–5m | 라테라이트 기초층 |
| 5–10m | 붕괴된 사암 블록 |
| 10–15m | 건축 잔해 |
| 15–20m | 장식 기둥 파편 |
| 20–25m | 사암 기초 블록 |
| 25–27m | 점토 자연층 |
도면에 기록된 실제 발견물
| 기록 | 의미 |
|---|---|
| Fragment de colonette décorative | 장식 기둥 조각 |
| Débris de grès éboulis | 사암 붕괴 잔해 |
| Blocs de latérite | 라테라이트 블록 |
| Traces de terre glaise | 점토층 |
앙코르 와트 3층 중앙 성소 바로 아래에서 깊이 약 27미터에 이르는 수직 샤프트를 발견한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물이 없어… 보물이 없어…”
우리가 발견한 것은 보물이 아니라 모래와 규사, 라테라이트, 그리고 점토층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연구 성과 중 하나일 것이다.
굴착 작업은 1934년 8월부터 1935년 2월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약 13.4미터 깊이에서 라테라이트 덩어리를 만났고, 거기서 16미터 정도 더 내려가자 지하수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약 20미터 깊이까지 파 내려갔을 때 쏟아져 들어오는 물과 계속 무너져 내리는 모래 때문에 작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숨 막힐 듯한 더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밤낮으로 두 교대로 작업을 계속했다. 마침내 22미터 깊이에 도달했을 때 다시 적토암층을 만났다.
밤새 작업하며 그 적토암 덩어리를 하나씩 잘라냈다. 새벽 6시, 두 번째 적토암 덩어리를 정리하던 중 원형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부분을 발견했다. 우리는 앙코르 와트 기초 구조와 관련된 광물 매장층을 발견한 것이다.
그 원형으로 파인 공간 안에는 수정과 금박이 들어 있었다. 금박 조각은 두 개였고 각각 약 18센티미터 크기였다.
지름 23센티미터, 깊이 12센티미터의 원통형 구멍 바닥에는 둥근 금박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그 구멍은 매우 고운 모래로 채워져 있었으며 그 안에는 두 개의 수정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래쪽 금박 조각 아래 바닥은 미세하게 부서진 라테라이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지표면에서 약 23미터 깊이를 지나 계속 탐사를 진행했고, 25미터 지점에서 점토층을 만났다. 27.5미터 깊이까지 더 파 내려갔지만 그 아래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12세기 초중반에 건설된 앙코르 와트가 수리야바르만 2세의 무덤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장품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15세기 아유타야 왕국의 침략 과정에서 사라졌는지, 혹은 16세기 앙찬 왕이 복원 작업을 하면서 유실되었는지, 아니면 그 이후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보물의 흔적이라고는 금박 몇 조각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보물이 사라진 흔적만 남는 일은 개미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그래도 오늘 밤은 트루베와 함께 당코르 호텔에 들러 텁텁한 위스키 한 잔을 마시게 될 것 같은 그런 날이다.
1935년
앙리 마샬 (Henri Marc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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