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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적

(프놈펜의 시간 여행) 첫번째 시리즈: 르 로얄 호텔 (Raffles Hotel Le Royal)

캄보디아 프놈펜의 시간 여행: 프랑스 식민지 시대 유산의 보존과 공간의 재구성

​서론: 제국주의적 공간의 이식과 캄보디아 근현대사의 궤적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은 단순한 지리적 중심지를 넘어,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의 팽창, 독립국가의 문화적 부흥,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파괴,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의 편입이라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물리적 공간 안에 응축하고 있는 역사적 텍스트다. 1372년에 건립된 왓 프놈(Wat Phnom) 사원 외에는 이렇다 할 고대 건축물이 남아있지 않았던 이 도시는, 186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보호령 조약을 체결하면서 근대적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889년에서 1890년 사이, 프랑스의 행정관 후인 드 베르네빌(Huyn de Vernéville)은 강 서쪽의 늪지대를 매립하고 시소왓 퀘이(Sisowath Quay)를 따라 도로, 교량, 항구를 건설하는 대규모 도시 인프라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1894년 발생한 대화재 이후, 식민 당국은 목재와 대나무 대신 벽돌과 시멘트를 건축 자재로 의무화하며 프놈펜을 서구식 근대 도시로 개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프랑스 식민 당국은 고향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덥고 습한 열대 몬순 기후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적응하기 위해, 유럽의 신고전주의 및 아르데코(Art Deco) 양식에 현지의 건축적 지혜를 융합한 독특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두꺼운 벽돌 벽, 높은 천장, 통풍을 원활하게 하는 목재 루버(louver) 창문, 깊은 갤러리와 차양 등은 열대 기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표적인 건축적 적응 기제였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들은 오늘날 프놈펜 전역에 남아있는 500여 개의 식민지 시대 구조물에서 여전히 관찰된다.
​그러나 프놈펜의 유서 깊은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은 단순한 미학적 성취나 기후적 적응의 결과물로만 머물지 않는다. 1953년 11월 9일 캄보디아가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국왕의 지도 아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이 건물들은 상쿰 레아스트르 니윰(Sangkum Reastr Niyum, 인민사회주의공동체) 시대의 화려한 문화적 르네상스를 목격했다. 이어진 1970년 론 놀(Lon Nol) 장군의 쿠데타와 내전 , 그리고 1975년 4월 17일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크메르 루즈(Khmer Rouge) 정권의 ‘제로 년(Year Zero)’이라는 극단적 농업 공산주의 실험 속에서 이 건축물들은 파괴되거나 원래의 목적을 상실했다. 크메르 루즈 정권 붕괴 후 빈민들의 무허가 점유지로 전락했던 이 공간들은, 1991년 파리 평화 협정과 1993년 UNTAC(유엔 캄보디아 임시 행정 기구) 체제를 거치며 서서히 현대 자본주의적 상업 공간으로 부활(Adaptive Reuse)하는 극적인 생애 주기를 겪어왔다.

본 보고서는 프놈펜 구도심에 현존하는 6개의 유서 깊은 건축물(르 로얄 호텔, 마 노리스 호텔, 인도차이나 은행, 중앙 우체국, 럭스 극장, 외신기자클럽)을 중심으로, 각 장소에 얽힌 정취와 역사적 서사를 연재 형식으로 심층 분석한다. 이를 통해 건축물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을 넘어 어떻게 캄보디아의 집단적 기억을 담아내고 있으며, 현대 상업 자본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 고찰한다.

​제1장. 제국의 우아함에서 내전의 피난처로: 르 로얄 호텔 (Raffles Hotel Le Royal)

​1. 에브라르의 비전과 아시아 최고급 사교장의 탄생

​프놈펜 중심부, 다운 펜(Daun Penh) 구역에 위치한 르 로얄 호텔(Raffles Hotel Le Royal)은 1929년 개장 이래 캄보디아 근현대사의 영광과 비극을 고스란히 목격해 온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1928년 대공황의 전야에 프랑스 출신의 저명한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가인 에르네스트 에브라르(Ernest Hébrard)의 설계로 착공된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었다. 그의 선구적인 도시 계획은 운하를 메우고 정원과 공원을 조성하며, 신규 중앙 시장을 설계하는 동시에 프놈펜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건축물인 이 호텔을 세우는 것을 포함했다. 에브라르는 전통적인 크메르 건축 양식 대신 프랑스 식민지 양식(French Colonial style)을 채택하되, 이를 현지의 기후적, 건축적 특성과 섬세하게 융합했다. 경사진 기와지붕, 규칙적으로 배열된 삼각형의 지붕창(dormer windows), 개방되고 통풍이 잘되는 복도, 그리고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셔터가 달린 창문은 이 호텔의 상징적인 건축 언어가 되었다.
​1929년 시소왓 모니봉(Sisowath Monivong) 국왕을 비롯한 캄보디아 왕실과 귀족들이 참석한 화려한 무도회와 함께 문을 연 르 로얄 호텔은 곧바로 아시아에 주재하는 프랑스 엘리트들과 국제 여행객들의 사교 중심지로 부상했다. 1936년 찰리 채플린의 방문을 시작으로 영국의 대문호 W. 서머싯 몸,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그리고 샤를 드골 대통령 등 당대 세계적인 명사들이 앞다투어 이 호텔에 머물렀다. 1950년대에 이르러 상쿰 정권의 성공적인 경제 프로젝트로 프놈펜을 찾는 국제 관광객이 급증하자, 호텔 측은 프랑스 건축가 앙리 샤텔(Henri Chatel)의 주도하에 본관 상층부에 객실을 추가 증축했다. 샤텔은 1950년대 후반 30개의 방갈로와 6개의 스튜디오 아파트를 추가하고, ‘르 시렌(Le Cyrène, 고대 그리스 식민 도시 이름이며, 현재의 리비야 지역, 성경에서는 키레네로 등장)’이라는 야외 레스토랑과 수영장, 테라스를 신설하며 호텔의 입구 홀 전체를 개조하여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은 호화로운 외관을 완성했다.

​2. 재클린 케네디의 방문과 ‘팜므 파탈’의 전설

​르 로얄 호텔의 역사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외교적으로 중요한 순간은 1967년 미국 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의 방문이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과 모니크(Monique) 왕비의 공식 초청으로 캄보디아를 찾은 그녀의 방문은 표면적으로는 앙코르와트를 관람하고자 하는 그녀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으나, 이면에는 베트남 전쟁의 격화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아누크 국왕의 고도의 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재클린 케네디 일행에게 환상적인 환대를 제공하기 위해 르 로얄 호텔 측은 최고급 샴페인, 꼬냑, 그리고 크렘 프레즈(crème fraise, 딸기 리큐어)를 혼합한 특별한 시그니처 칵테일을 창조하여 그녀에게 헌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호텔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현재 호텔의 고풍스러운 ‘엘리펀트 바(Elephant Bar)’에는 당시 재클린 케네디가 입술을 대어 옅은 핑크색 립스틱 자국이 남은 길고 얇은 줄기의 칵테일 잔이 전시되어 있다. 이 유리잔이 내전과 크메르 루즈 시대, 베트남의 점령 등 그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깨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호텔을 개인적으로 보살폈던 시아누크 국왕의 숨은 노력 덕분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이 장소에 얽힌 일화는 역사적 신비감을 더한다.

3. 전쟁의 관측소에서 적십자 중립 구역으로의 전락

​그러나 1970년 론 놀(Lon Nol, 당시에 론놀을 비판할 때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즉, 정권이 계속 제자리라는 비판) 장군의 우익 공화국 세력이 시아누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캄보디아 내전이 본격화되면서, 호텔의 운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왕실을 연상시키는 모든 명칭이 금기시됨에 따라 호텔은 ‘르 프놈(Hotel Le Phnom)’으로 강제 개칭되었다. 전운이 짙게 드리운 프놈펜에서 르 프놈 호텔은 베트남 전쟁의 이면인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비밀 전쟁(Secret War)’을 취재하러 온 국제 언론인들과 NGO 구호 요원들의 최후의 집결지이자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훗날 영화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를 통해 전 세계에 캄보디아의 비극을 알린 뉴욕 타임스의 특파원 시드니 섄버그(Sidney Schanberg)와 그의 캄보디아인 통역사이자 사진기자인 디스 프란(Dith Pran) 역시 이 호텔을 근거지로 삼아 치열하게 전쟁의 참상을 취재했다.
​1975년 4월, 공산주의 반군인 크메르 루즈가 프놈펜을 포위하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올 무렵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정치적 불안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호텔은 과거의 매력을 일부 간직하고 있었으나, 1975년 4월 16일 국제적십자사(ICRC)가 부상자 치료를 위해 이 호텔을 ‘적십자 중립 구역(Red Cross Zone)’으로 긴급 선포하면서 호텔은 야전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프랑스 엘리트들은 인근의 프랑스 대사관으로 피신했고, 적십자 요원 14명만이 남아 인도주의적 지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4월 17일, 프놈펜을 완전히 장악한 크메르 루즈가 도시 전체의 인구를 강제로 농촌으로 추방하면서, 호텔 역시 적십자 병원으로 사용된 지 단 하루 이틀 만에 텅 빈 채로 강제 대피되었고 철저히 버려지고 말았다.

​4. 상징성의 회복과 럭셔리 헤리티지의 부활

​크메르 루즈가 베트남군에 의해 축출된 후인 1979년,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체제 하에서 호텔은 연대와 결속을 의미하는 ‘사마키 호텔(Hotel Samakki, 사마끼는 크메르어로 단결 또는 연대를 의미)’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내전 직후 복구 작업에 투입된 국제 구호 단체 직원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었다. 이 역사적인 건물이 본래의 찬란한 위상을 되찾은 것은 1993년 UNTAC 체제 하에서 캄보디아의 군주제가 복원되고 시아누크 국왕이 귀환하면서부터다. 호텔은 마침내 본래의 이름인 ‘르 로얄(Hotel Le Royal)’을 되찾았다.
​이후 1997년, 싱가포르의 고급 호텔 브랜드인 래플스(Raffles) 그룹이 이 호텔을 인수하여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아누크 국왕이 복원 작업을 개인적으로 감독하며 역사적 정통성과 디테일을 되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복원된 호텔의 ‘엘리펀트 바’는 아치형 콜로네이드(colonnade, 건축에서 기둥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구조)와 프랑스식 대형 창문, 등나무 가구, 가죽 소파 등 식민지 시절의 인도차이나 문화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며 프놈펜 헤리티지의 정수로 자리 잡았다. 르 로얄 호텔은 제국주의의 우아한 피조물로 태어나, 폭력 앞의 피난처를 거쳐 국가 재건의 상징으로 귀환한 캄보디아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건축적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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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와 메콩 지역의 역사, 문화, 경제를 탐구하고 기록하는 Mekong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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